‘하늘만 쳐다보는 행정’.
포항시가 당일 오후에 전격 취소한 ‘2025 포항국제불빛축제’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요약한 이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이자, 포항시 행정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를 드러낸 한 문장이다.
24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대규모 지역 축제. 포항시가 “기습적인 호우주의보”를 이유로 이 행사를 당일 오후 4시 30분 전면 취소한 일은, 단순한 기상 변수의 문제가 아니다.
예측된 장마철, 예상된 변수 속에서 아무런 플랜B 없이 기다리다 결국 ‘손 놓고’ 결정한 행정의 무책임이 본질적 원인이다.
문제는 수없이 많다. 우선, 포항시는 시민과 관광객에게 행사 전날까지도 개최 여부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았다.
기상청의 호우주의보 발령은 전혀 돌발적이지 않았다. 6월 중순부터 전국적으로 예보된 장마는 기정사실이었고, 불꽃축제처럼 야외 군중 밀집 행사의 경우, 우천 시 대응 매뉴얼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포항시는 강수량 기준도 모호했고, 공식 채널을 통한 커뮤니케이션도 부재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인스타그램과 커뮤니티를 뒤지며 정보를 수소문했고, 대다수 관광객은 수 시간 이동 후 포항 도착 직전에야 “취소” 소식을 알게 됐다.
“비행기 타고 왔다”, “연차 쓰고 기름값 10만원 썼다”, “숙박 예약 어쩌냐”는 울분 섞인 목소리는, 단순한 불만이 아닌 피해 보고였다.
또한 가장 심각한 건 ‘대체 프로그램’조차 없었다는 사실이다. 악천후는 명백한 변수였음에도, 실내 대체 행사나 축소 공연, 관광객을 위한 안내 체계 하나 없이 시는 문자 하나로 모든 책임을 면피했다. “안전 때문”이라는 일방적인 명분 뒤에는 아무런 전략도, 시민에 대한 존중도 없었다.
이 같은 취소는 단지 관광객에게 실망을 안긴 수준을 넘는다. 해도동·송도동 일대 상권은 당일을 위해 냉장식품과 간편식을 대량 확보했다.
도시락·김밥·음료를 폐기하거나 ‘1+1 할인’으로 내놓는 편의점들의 모습은 포항시가 낳은 참사의 후폭풍이다. 자영업자들에게는 행사 자체보다 ‘사전 예고 없는 갑작스런 행정’이 더 큰 재난이었다.
더욱이 일부 좌석이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암표로 유통된 정황까지 드러났다. 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지만, 이는 공공 행사 운영의 기본 원칙과 감시 체계가 무너졌다는 증거다. 대체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포항시 행정은 어디에 있었는가.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24억짜리 축제를 준비한 공무원 조직 안에는 재난관리 전담자도, 사전 매뉴얼도, 시민 안내 책임자도 없었는가?기상 리스크를 고려해 6월 말이라는 시점에 축제를 강행한 결정은 누가 내렸고,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지역 축제는 관광을 넘어서 지역 이미지와 행정의 품격을 보여주는 시험대다. ‘국제’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상, 더 높은 기준과 책임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번 포항 불빛축제의 전개는, 관광객을 불편하게 한 ‘행사 실패’가 아니라, 시민과 도시를 무시한 ‘행정 실패’로 기록될 것이다.
포항시는 지금이라도 정확한 취소 결정 경위와 판단 기준, 암표 유통에 대한 조사, 상인 손실에 대한 실태 파악, 그리고 무엇보다 근본적인 행정 시스템 개편과 위기 대응 매뉴얼 정비에 착수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장마라 어쩔 수 없었다”는 한 마디로 덮을 수 없다.시민들은 하늘이 아닌, 행정을 믿고 도시를 찾았다.그 신뢰를 져버린 것은 하늘이 아니라 포항시 자신이다.
“잿더미 위에서도 복숭아는 다시 익어갑니다.”
지난 3월 대형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경북 영덕군의 복숭아 농가들이, 다시 햇살 아래 복숭아를 수확하며긴 어둠을 걷어내고 있다.
영덕은 경북 동해안의 대표적인 복숭아 산지다. 해풍과 일조량이 풍부해 향이 깊고 당도가 높은 복숭아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난 산불로 수백 그루의 복숭아 나무가 잿더미로 변했고, 일부 농가는 수확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가지에서 핀 햇복숭아가 다시 영덕의 여름을 알리고있다. 영덕군도 발 빠르게 나섰다.
오는 7~8월영덕읍 남산1리 마을회관 앞, 영해면 영해휴게소 야외판매장 2곳에서 복숭아 판매장터를 운영, 피해 농가의 판로를 지원하고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기로 했다.
영덕군 관계자는 “이번 장터는 단순한 판매행사가 아니라 산불 피해를 딛고 일어서는 지역 농업인의 회복 프로젝트”라며, “전국 소비자들에게 품질 좋은 영덕 복숭아를 소개하는 계기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장터에는 직거래 부스, 시식 행사, 온라인 연계 판매등도 병행될 예정이며, 수익금 대부분은 피해 농가에게 돌아갈 방침이다.
산불 당시 과수원 절반이 타버린 한 농민은 “그날은 정말 모든 걸 잃은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며 “복숭아 향처럼 따뜻한 응원을 많은 분들이 보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영덕군의 복숭아는 매년 6월 말부터 8월 초까지가 출하 성수기다. 군은 이번 장터를 통해 복숭아를 지역 경제 재건의 상징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국가균형발전의 상징으로 추진 중인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사업을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역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경북, 충남, 충북 등 중부 내륙 3개 도의 13개 시·군 단체장들이 직접 나서릴레이 챌린지를 펼치는 등 여론전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번 릴레이 챌린지는 지난 4월 30일 이완섭 서산시장을 시작으로, 신현국 문경시장(5월 21일), 박현국 봉화군수(5월 30일)까지 한 달 이상 이어졌다.
참여한 지자체는 문경시, 서산시, 당진시, 예산군, 아산시, 천안시, 청주시, 증평군, 괴산군, 예천군, 영주시, 봉화군, 울진군등 총 13곳이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는 서산문경울진을 잇는 총연장 330㎞의 철도망으로, 사업비는 약 7조 원 규모다.
사업이 완료되면 서산시에서 문경시까지 약 1시간 10분, 문경시에서 울진군까지 약 50분 만에 이동이 가능해져 교통 편의는 물론 지역 간 산업·관광 교류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노선은 기존 남북축 위주의 철도망을 보완하는 동서축 간선망으로, 그동안 교통 인프라에서 소외됐던 중부 내륙 지역을 연결해 국토 균형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치권에서도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해 국회에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등을 담은 특별법안이 발의되며 제도적 기반도 마련 중이다.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은 올해 하반기 중 고시될 예정이어서, 해당 노선의 반영 여부가 지역의 뜨거운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지역 간 산업과 관광의 실질적 교류가 이뤄지기 위해선 내륙 간 접근성 확보가 필수”라며, “국가 전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포함돼야 할 노선”이라고 강조했다.
\"하루 생산량을 반으로 줄였습니다. 주문이 없으니 라인을 돌릴 이유도 없습니다.”
포항에서 20년째 철강 제조업을 운영 중인 K업체 대표의 한숨은 깊어졌다. 그는 이달 초 설비투자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원자재 수입도 보류한 상태다. 이유는 단 하나. 일감이 없다.
경북의 주력 산업인 철강과 이차전지 업계가 동시에 위기를 맞고 있다. 포항과 구미의 공장가동률은 각각 76%, 66%에 그치고 있으며, 업계 안팎에선 “공장이 제대로 돌지 않는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포항은 국내 대표 철강기지다. 그러나 철강 수요 부진과 글로벌 가격 경쟁 심화로, 생산라인 일부가 셧다운(중단)상태다. 글로벌 탈탄소 정책의 여파로 구조조정이 예고됐던 철강업은, 국내 경기침체와 맞물리며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차전지 산업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때 미래 먹거리로 각광받았지만, 중국의 저가 공세와 수요 둔화로 국내 생산기지는 채산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구미의 한 2차전지 부품업체 관계자는 “작년보다 출하량이 40% 가까이 줄었다”며 “하반기에도 회복 가능성이 낮다”고 전했다.
지역 경제의 또 다른 축인 건설업도 침체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경북의 건설수주액은 전년 동기 대비 35%나 감소했다.최근 3년간 누적 수주 감소액만 해도 5조5000억원에 달한다.건설노조 관계자는 “건설 현장이 아예 사라졌다는 말이 실감난다”며 “실업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선 경북 지역 경제에 대한 정부의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철강·이차전지 등 기간산업에 대해선 수요 창출을 위한 공공 프로젝트 확대나 수출 판로 개척 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공장 가동률이 70%대로 떨어진다는 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로 진입했음을 뜻한다”며 “산업단지 기반의 지역경제 특성상 경기 회복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경북도는 지역 경제·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한다고 17일 밝혔다.
TF는 산업위기 지역 지정 추진 등 경제위기 긴급 대응 방안을 수립하고 소상공인·에너지 정책 및 북극항로 개발 등 새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공조 과제를 마련할 예정이다. 또 인공지능(AI) 시대 동남권 신 제조업 부흥 정책 등 미래 경제 전략과제를 구상한다.
양금희 경북도 경제부지사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경기 대응형 투자에 더해 균형발전을 가로막는 구조적 문제해결을 위한 미래 투자까지 정책에 반영하는 체계를 갖춰나가겠다\"고 말했다.
전기차 보조금을 더 받으려 포항에서 울릉군으로 위장전입해 보조금을 받은 50대에게 벌금형이 선고됐다.
대구지법 포항지원 형사1단독(박현숙 판사)는 17일 지난 2022년 울릉군으로부터 전기자동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 위장전입을 하고 보조금 2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포항거주 50대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법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22년 9월 민원24에 접속해 실제 전입하지 않은 울릉군 울릉읍으로 전입신고를 한 혐의이다.또, 같은해 10월 포항의 한 자동차 판매점에서 포터 전기자동차를 구매하며 \'전기자동차 구매 지원신청서\'를 울릉군에 제출해 보조금 2500만원을 받은 혐의이다.재판부는 \"거짓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해 국가보조금과 지방보조금을 교부받았고, 수령한 보조금의 액수도 상당해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 \"다만 울릉군을 피공탁자로 해 1100만 원을 공탁한 점 등을 고려했다\"는 양형이유를 밝혔다.
경북 동해안 25개 해수욕장이 다음 달 11일부터 순차적으로 개장한다. 이 가운데 2007년 폐장했던 포항 송도해수욕장이 18년 만에 다시 문을 연다.
경북도는 17일 포항 동부청사에서 경북소방본부, 해경, 보건환경연구원, 시군 관계자 등과 함께 여름철 해수욕장 운영 및 안전관리 대책 회의를 열었다.
경북에 따르면 가장 먼저 경주지역 4곳 해수욕장이 7월 11일 개장하고, 다음날인 12일부터는 포항 8곳, 영덕 7곳, 울진 6곳 등 총 21곳이 일제히 개장해 8월 24일까지 운영된다.
올해 개장 일정에서 눈길을 끄는 곳은 포항 송도해수욕장이다. 지난 2007년 폐장한 뒤 오랜 기간 시민의 바다 접근이 제한됐으나, 올해 재정비를 거쳐 18년 만에 다시 피서객을 맞는다.
각 지자체는 해수욕장 개장을 맞아 다양한 지역 축제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포항시는 ‘영일대 샌드페스티벌’과 월포해수욕장의 ‘전통 후릿그물 체험 행사’를 마련했고, 경주시는 ‘한여름밤의 음악축제’, 영덕군은 ‘대진 썸머페스티벌’ 등을 통해 침체된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계획이다.
도는 해수욕장별 위험성 평가를 완료하고, 예상 이용객 수에 맞춰 안전관리 요원과 장비를 적정 배치할 예정이다.
개장 전 수질 및 토양오염 조사, 주변 환경 정비도 마무리하기로 했다.
특히 지난해 해파리 쏘임 사고가 급증했던 점을 고려해, 해파리 유입 차단용 그물망 설치와 수거 인력 확대등 예방책도 강화한다.
경북도 관계자는 “청정하고 안전한 해수욕장을 조성해 경북 동해안을 다시 찾고 싶은 여름 피서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경북교육청이 최근 일부 지역에서 늘봄학교 강사 채용에 특정 민간단체가 개입됐다는 의혹과 관련, 도내 모든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한 결과 부적절한 채용사례는 없다고 12일 밝혔다.
또 채용 과정에서 외부의 부당한 개입이나 압력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경북교육청에 따르면 각 학교는 늘봄 강사 채용 때 학교 또는 교육지원청에서 온오프라인으로 모집 공고를 하고 공고문에는 프로그램 내용, 자격 요건, 면접과 선정 절차 등 채용 전 과정을 안내한다. 강사 선정은 내외부 인사로 구성된 평가위원회가 객관적 기준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하며 성범죄와 아동학대 관련 범죄 전력 조회는 필수적으로 하고 있다고 교육청은 밝혔다. 이번 1학기에는 9022명의 늘봄학교 강사가 채용됐으며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 조사를 기반으로 1만5000여 개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경북도는 의성, 영양 등 대형산불 피해 5개 시·군에 임대 농기계 322대를 추가로 지원한다고 12일 밝혔다.
국비 24억원 등 48억원을 들여 농민 수요가 많은 트랙터, 관리기, 예취기 등을 우선 구매한 뒤 산불 피해 농가에 임대해 영농에 차질이 없도록 돕는다. 도는 앞서 지난 4월 57억원을 산불 피해지역 임대 농기계 확충에 지원했으며 개별 농가의 농기계 구매에도 100억원을 긴급 편성해 지원했다. 이와 함께 전국 농기계임대사업소 및 농기계 업체에서 보유하고 있는 농기계를 활용해 산불 피해지역에 농기계 396대를 한시적으로 무상 임대했다. 김주령 경북도 농축산유통국장은 \"올 한해 산불 피해지역의 영농활동에 차질이 없도록 농기계 지원사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동대학교가 인구소멸 위기 지역인 울릉도의 교육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지역 혁신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2026학년도부터 \'울릉도전형\'을 신설한다.
11일 한동대는 학생부 종합전형 내 \'농어촌전형-울릉도전형\'을 신설해 5명을 별도로 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전형은 울릉도에 주소를 둔 수험생을 대상으로 하며, 고등교육 진입의 기회를 넓히고 지역 인재의 수도권 유출을 막기 위한 취지다.
선발된 학생들은 입학 후 2학년 진급 시 한동대 울릉캠퍼스의 ‘글로벌그린이노베이션학과’에 배정돼 두 학기 이상 ‘지역혁신 집중학기’를 이수해야 한다.
이 집중학기 동안 학생들은 울릉도에 상주하며 지역 주민들과 협력해 현안을 발굴하고, 지속 가능한 해결 방안을 직접 설계·실행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한동대는 이를 통해 울릉도 청년 인구 기반을 다지는 한편, 지역 문제 해결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체계적 교육 모델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김창욱 한동대 입학처장은 \"울릉도전형은 단순한 특별전형을 넘어, 인구소멸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교육의 힘으로 풀어보려는 실천적 시도\"라며 \"지역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통계청에 따르면 울릉군은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30%를 넘어선 대표적 소멸위험지역으로, 향후 10년간 청년층 유입이 없다면 지역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 11월, 경북 포항을 뒤흔든 지진은 단지 한 도시의 상처로만 남지 않았다. 국책사업인 지열발전이 불러온 \'촉발지진\'이라는 점에서, 이 재난은 명백한 인재(人災)였고, 국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역사적 시험대였다.
정부조사단은 지진의 원인을 지열발전으로 명시했고, 감사원은 20건의 위법·부당 행위를 지적했다. 심지어 국무총리 산하 포항지진진상조사위원회는 사업 관계자들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기소했다. 전문가들도, 피해자들도, 언론도 그 책임을 물었다.
그럼에도 지난달 대구고법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지진 피해 시민 111명이 국가와 포스코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과실 입증 부족\'을 이유로 기각했다. 원고 패소. 피해자들에게는 차가운 결론이었다.
그러자 이제서야 포항시, 시의회, 지역 국회의원들까지 줄줄이 대법원 앞에 모였다.호소문을 제출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했다. 그 진정성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은 피할 수 없다.
정말 지금 이 항소심 판결까지 가는 동안 지역 정치권과 지도자들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는가?
기억해보자. 지난 수년 간, 포항지진과 관련한 피해자 단체, 범시민대책본부는 줄기차게 목소리를 내 왔다. 생계 기반을 잃은 시민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학생들, 무너진 일상을 되찾지 못한 노인들.
하지만 그간 정치권과 시 당국이 보여준 대응은 소극적이고 분절적이었다.
중앙정부 책임만을 강조한 채, 지역 차원의 여론 수렴, 법률적 공방 준비, 피해자 지원 체계 구축은 충분치 않았다. 오히려 정치적 이슈에 따라 그때그때 반짝 대응에 그친 감이 적지 않다.
항소심까지 이르기까지, 수년간 이어진 재판. 그 과정에서 정말 실질적 피해 자료 축적은 충분했는가? 전문가 자문과 법리 검토는 일관되게 이어졌는가? 시민 전체의 집단적 법 감정을 전달할 조직적 장치가 있었는가?
지역 지도자들이 이제 와서 말하는 ‘정의로운 판결을 원한다’는 외침이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법 판단이 민감하고도 복잡한 영역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치권은 충분한 준비와 지역 공감대 없이 법원 앞에서만 항의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지진 소송이 아니다. 국책사업과 시민 피해, 과실 입증과 국가 책임이라는 사법·정책·도덕적 쟁점이 뒤얽힌 \'국가적 책임 판단\'의 기준을 세우는 시금석이다.
그렇기에 대법원의 판단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무게만큼 지역의 정치·사회 지도자들도 자신들의 역할을 되짚어봐야 한다.
정의는 준비된 자의 것이다. 포항지진이 단지 대법원 판결만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면, 포항시와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묻고 답해야 한다.우리는 시민과 함께, 충분히 싸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