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의 대표 농축산지 주민들이 요즘 밤잠을 설친다. 미국산 사과와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확대가 정부 협상 테이블에 오르면서, 생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3월 초대형 산불로 직격탄을 맞았던 경북 북부 사과 농가에는 이번 소식이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로 돌아온다.
청송군 파천면에서 30년 넘게 사과 농사를 지어온 박모(63) 씨는 요즘 뉴스만 틀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사과나무 수십 그루가 산불에 탔는데, 아직 보험금도 못 받았어요. 그런데 미국산 사과가 들어온다니… 그걸 어찌 막나. 고생해서 만든 우리 사과는 누가 사겠어요.”
청송은 지난해 7만5천톤의 사과를 생산하며 전국 생산량의 약 14%를 차지한 ‘사과의 고장’이다. 인근 안동·영양·영덕·의성까지 합치면, 경북 북동부 전체가 전국 사과 재배 면적의 3분의 1에 달한다. 이 지역이 무너지면 전국 사과 산업의 허리가 꺾인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경북 북부 지역의 축산농가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특히 달성·성주·영천 등에서는 한우 농가들이 이미 출하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확대는 “절망을 부채질하는 격”이라며 반발이 거세다.
대구 달성군에서 한우 40두를 사육하는 김모(52) 씨는 “1등급 이상으로 키워도 예전 같은 값을 못 받는다”며 “송아지 10마리 사서 키우고 있는데, 미국산 들어오면 그 값도 보장 못 받는다. 정부는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경북은 전국 한우 사육 마릿수의 약 20%를 차지하며, 육질 1등급 이상 출현율도 최근 2년 연속 전국 1위였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현실화될 경우 이들 농가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지역 정치권과 농민단체들도 일제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국농민회 경북도연맹과 경북한우협회 등 6개 단체는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농축산물을 통상 협상 카드로 내놓는 행위는 국민의 먹거리와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경북도의회와 청송군의회도 잇따라 성명을 통해 “미국산 사과 등 농산물 수입 협상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농민들은 “자동차나 반도체 협상을 위해 농민을 제물로 바치는 일은 반복돼선 안 된다”며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 이 땅의 농민들과 먼저 대화하라”고 입을 모았다.